정말 오랜만에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이전부터 엄마가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었지만
정황상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집을 보고 아이를 돌보고 내 나름대로의 일들을 처리하기에 심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혼을 결심하고
숱하게 밀려오는 걱정거리들 앞에서
잔잔한 명상도 위로가 될만한 어떤 것들도 아무 소용이 없던 찰나
찬송가 한 구절이 마음을 가라앉히게 해준다.
어릴때부터 접해와서 익숙해진 이유인지
정말 믿음의 힘이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내 주변 모두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첫 예배에 참석하고
모든 말씀과 이야기가 나에게 닿아 마음을 울렸다.
그곳은 모두가 친절했고 즐거워보였다.
사실 그 믿음의 근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치않다.
내 마음의 소리를 말할 수 있고 누군가 그걸 듣고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머릿속에 복잡하게 남아있는 것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된다.
외동으로 자라 소통의 기회가 적었던 내게는 더욱 더 그랬다.
코로나로 간결하게 끝난 예배 후에는 엄마와 시아를 데리고
이모네 고추밭에 가게 되었다.
시아에게 직접 고추를 따는 일은 힘든 일이었고
그 주변을 산책하며 다니던 찰나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하나씩 주워가며
동화같은 순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동화에는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와 사납개 짖는 강아지
그리고 징그러운 지네도 나타나 우릴 놀래켰다.
6살 아이의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생각이 있다.
그래서 시아와 대화할때는 마치 동화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포장도 되지않은 흙길을 빠져나오며
자동차 계기판의 주행거리를 보니 근래들어 운전을 꽤 많이 했다는걸 깨달았다.
엄마를 이모댁에 모셔다 드리는 등 이곳저곳 이동이 잦았던 탓이다.
자동차가 흙무더기와 돌을 넘으며 휘청휘청 흔들린다.
자가용이 아니었더라면 이곳을 대중교통과 도보로 오가며
무거운 짐도 따로 들고 왔어야 했을텐데
엄마가 그간 얼마나 힘들게 다녔을지 마음이 아파온다.
비로소 혼자가 되어서야 혼자인 엄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게 된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가기전에 시아와 함께 공원에 들르니 예쁘게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그곳에서 엄마와 시아의 미소가 보이는 듯 하다.
힘겨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