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회사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아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었다.
그 중 한분이 아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한들
나중에 보여줘도 정작 아이는 무덤덤하지 않을까?
비싸게 앨범을 만들어도 짐만되더라~ 라는 이야기를 했다.
열심히 남겨둬도 소용없다는 뉘앙스가 조금 김이 빠지는 내용이다.
본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이므로 반박할 이유는 없었지만
누군가 (혹은 훗날 시아가) 나의 목적을 오해할 여지가 있으니
이 기회를 빌어서 나의 의도를 정리해두고자 한다.
우선, 모든 성장자료는 아이의 기쁨을 목적으로 남기는게 아니다.
정작 나도 내 셀프사진에는 그다지 애착을 가지지 않을 뿐더러
내 딸이 본인의 사진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나르시시즘 인격으로 키워내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쌓여가는 아이의 성장사진을 보며 기뻐하는 것은 아이의 부모이며,
만약 이게 누군가의 기쁨을 위한것이라면,
그건 단연코 딸바보 내 자신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만큼
수지가 맞는 작업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단지, 내가 바라는건 이 매개들로 인해서
시아가 정서적 안정과 유대감을 갖도록 하고싶은 바람이다.
누구나 유아시절을 보내지만, 그 유아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내 아이의 인생 중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어쩌면 영영 잊어버릴지 모르는 이 순간들을
누구보다도 소중히하고 예쁘게 담아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엄마아빠가 올바른 육아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미숙함에 진통을 겪는 모습
그러다가도 딸의 미소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
공원에 놀러나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등.
가족과 함께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런 시간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그 당시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
그 차이는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에 큰 영향이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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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시절을 돌아보자면,
그다지 좋은 환경에서 자란 편은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와 둘이 생활해왔었고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일터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가족간의 대화가 줄어들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자연스럽게 말 수가 줄어들고, 내성적으로 변해갔으며
인생의 중요한 난관에서 적절한 조언자를 찾기가 힘들어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매개들로
엄마, 아빠가 먼저 답습했던 인생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내 아이도 비슷한 경험이나 상황에 처해있을 때
"엄마아빠는 이랬었단다~" 하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일종의 지침이자 소통의 매개가 되어주고 싶다.
내 아이도 장차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나와 같은 과정을 겪게 될 터인데
자신의 성장과정을 알고 이해한다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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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한다.
다만, 어떤 요인때문인지 생각/내면 중심의 성향으로 성격이 바뀌어갔다.
그래서 평소에는 대체로 말을 아끼고 생각으로 삼키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같지만)
시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딸아이와 가급적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이루어질리 없다.
(조금씩 알아듣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나 혼자만의 대화일지 몰라도
아빠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소통하고 싶어했다는걸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 대화가 실제 대화로 쭉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주절주절 길게 썼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모아두는 모든 사진과 영상, 일기는
단지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한 선물이라기보단
내 아이가 인생 전반에 걸쳐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위한
단순 매개체에 불과하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단 시간에 완성될수도 없으며
인생 훗날까지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선물을 남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