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올해 초 겨울이었나. 그때부터 시아는 동물원에 몹시 가고싶어했다.
시아가 먼저 말을 꺼냈던건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당장 겨울에 동물원에 가더라도 볼 게 없을 것 같아
날씨가 좀 풀리면 한번 다녀와보는걸로 얘기가 나왔었다.
아, 칭찬 스티커를 10개 붙이면 동물원에 가기로 했었구나
그래서 한동안은 뭐만 하면 사과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면서
엄마아빠에게 최대한 잘 보이려는
시아의 귀여운 행동이 지속되었다.
날이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는데
봄 특성상 미세먼지와 황사 문제도 있어서 외출을 꺼리다가
어느덧 5월이 지나 6월이 되어버린 시점.
아내가 갈거면 여름 찜통이 되기전에
차라리 빨리 다녀오는게 좋지 않곘냐며 기특한 소리를 한다.
외출이라면 반색을 하는 아내라 웬일인가 싶었는데
사실 아내는 동물원을 좋아했었다.
결혼 전 데이트할때도 동물원에 가고싶다해서 다녀온적이 있었으니..
아무튼 동물원에 가자는 말에 방방뛰는 시아를 태우고
서울대공원을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아파트를 벗어나기도 전에
시아입에서 나온 말은 "아빠 언제 도착해요오~?"
"아니.. 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
그리고 도착할때까지 저 질문은 계속되었는데
어찌나 가고싶었더라면 저리 말할까 싶어서
더 일찍 데려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시큰해진다.
도착 후에는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주차자리를 빙빙 돌다가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해서 차를 대고 이동하던 와중,
아내와 시아는 토끼머리띠, 미니마우스 머리띠를 보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이럴때면 아주 엄마/딸이라기보단 자매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얻어낸 머리띠를 쓰고는 신났는지
셀카찍기에 여념이 없다가 겨우 코끼리 열차를 타고 입성!
아직 시아 키가 작다보니 동물들을 구경시켜줄때마다
들어올려서 보여주고 했는데
이건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는것보다 고된 느낌이 들었다.
이곳 저곳을 누비면서 신나게 구경하고
아내를 보니 점점 얼굴 빛이 어두워지는걸로 보아
슬슬 체력이 다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체력이 거의 소진되거나 배가고파오면
말 수가 적어지고 표정이 사라지면서 예민해지는 특성이 있다
완전히 눌러앉으려는 시아에게는
하늘의자를 타자고 집에가자고 설득해서 (리프트를 뜻함)
겨우 자리에 앉힐 수 있었으나
처음에 재미를 느끼던 모습과는 달리
중간부터는 무섭다며 내린다고 떼를 써서 환승지점에서는 다시 환불하고
코끼리 열차로 갈아타게 되어 비싼 리프트값을 조금 아낄 수 있었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는 고된 하루이긴 했지만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귀가길에는
그리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 시아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만족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내에게는 마냥 힘들었던 하루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소소한 이벤트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일상을
조금 더 의미있게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시아가 조금 더 커서 그 의미를 뜻깊게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